워라밸 vs. 워라인? 뭐가 더 우리에게 맞을까?
1970~80년대 서양에서 시작된 워라밸은 2000년대 국내에서 회자됐고, 2010년대 다수 기업이 혁신 방향으로 채택했다. 한편 서양에서는 워라밸과 대치되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을 강조하는 흐름도 등장했다.
1970~80년경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국내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이고, 대다수의 기업과 기관들이 중요한 조직문화 혁신방향 중 하나로 정의하고, 관련한 접근들을 시도한 시기는 2010년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2000~2010년대에, 서양에서는 차츰차츰, 워라밸과 대치되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워라밸이 맞느냐, 워라인이 맞느냐는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에게 좋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구글 HR조직이 2016년에 re:work를 통해 발표한 내용(Segmentors vs Integrators: Google’s work-life-balance research)에 따르면, 구글러들 중 일과 삶을 완벽히 구분짓는 이(Segmentors)들은 일과 삶의 경계를 모호하게 인식하는 이(Integrators)들에 비해 보다 행복감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워라인을 강조하는 버클리 경영대학원(UC Berkeley Haas)의 부학장 미셸 마르퀘즈(Michelle Marquez)는 "생활을 정의하는 모든 영역(직장, 가정/가족, 공동체, 개인의 안녕, 건강) 사이에서 더 많은 시너지를 창출하는 접근법”이 워라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2020), 미래학자인 제이콥 모건(Jacob Morgan)은 갈수록 일과 삶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며, 그렇기에 일과 삶을 융합하는 노력이 중요해질 것이라 말한다(2018). 또한, 심리적 웰빙 관련 전문가인 스테파니 해리슨(Stephanie Harrison)은 "워라인은 개인의 웰빙을 개선하고 직장에서 그들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2021).
그렇다면 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다소 김빠지는 얘기일 수 있으나, 워라밸-워라인 모두 본질적으로는 공통된 것을 추구한다는 ‘타임푸어’의 저자 브리짓 슐트(Brigid Schulte)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리짓 슐트는 “둘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일을 위한 시간과 가족, 보살핌, 인생, 기쁨, 놀이를 포함하여 일 외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것을 위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2020).
또한, 일찍부터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을 강조해온 와튼스쿨 교수인 스튜어트 프리드먼(Stewart D. Friedman)은 “너무 많은 사람이들이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잔인한 희생을 치러야 하고, 일에서 성공하려면 인생의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마치 워라밸을 강조하는 것처럼 설명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러한 관점 자체도 일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이며, “삶이란 일과 가족, 공동체, 자아(몸과 마음, 정신)간의 상호작용이고, 이 4가지 모두에서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통합적 접근(Integration)이 중요하다”고 강조함과 동시에 이 모두에서 성공적인 균형(Balance)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2014).
브리짓 슐트나 프리드먼 교수의 말에서 보자면, 결국 워라밸이든, 워라인이든 우리가 어느 하나를 주장하고-추구하는 데에는 본질적으로 내가 현재 살아가는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만족하기 위함에 있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이들을 ‘일에는 관심없고, 개인 여가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이기주의자’로 해석하거나, 워라인을 추구하는 이들을 ‘일에만 관심있는 일 중독자’로 바라보는 관점은 워라밸/워라인 각각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왜곡하여 해석하는 셈이다.
즉, 워라밸-워라인 어느 쪽을 본인 조직문화의 혁신 방향으로 정의했다 할 지라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목표, ‘어떻게 하면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을 건강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느냐’에 집중해야 함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는 담당자들이 워라밸/워라인을 경험하는 혁신 방법을 결정하기 이전에, 2가지의 중요한 사전 작업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어떠한 가정(Assumptions)들을 두고 있는가’를 봐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조직이나 구성원의 특성상, 어떠한 방식을 통해 삶의 모든 요소들에 대한 건강한 경험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현재 우리 구성원들이 일과 가족, 공동체, 자아에 대해 어떠한 가정들을 두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본인의 삶에서 ‘일’을 어떠한 관점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일을 ‘일 외적인 요소들의 온전한 경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시간을 할애 해야 하는 요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면, 이들에게는 일 외적인 삶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는 접근 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가정들을 만들어주는 접근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 필자가 조직문화 진단을 수행하다 보면, 많은 조직에서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일’에 대한 근원적인 가정들이 어떠한지 확인하는 단계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소 거칠게 단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은 행복과 거리가 멀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란 가정들이 공유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워라밸/워라인이 가진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자, 워라밸/워라인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강화시키는 빌미가 된다.
경영사상가인 찰스 핸디(Charles Handy)의 ‘나의 포르폴리오 인생’을 보면 건강한 삶을 만들어간다는 관점에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좋은 답안이 나온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 예컨대 금전적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들을 ‘일’이라고 얘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를 ‘일’이라고 표현한다. 마치 ‘일 중독자’처럼 받아들여지는 발언이나, 이는 자신이 삶에서 벌이는 모든 행동들이 갖는 의미나 가치를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일’이란 금전적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을 넘어, 자신의 삶에서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벌이는 행동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고, 인생에서 여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우리의 ‘업무’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은 결국 내가 추구하는 어떠한 ‘의미’나 ‘목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 웰빙 모델(Six-factor Model of Psychological Well-being)을 만든 캐롤 리프(Carol Ryff)의 생각과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인식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삶에서의 목적(Purpose in Life)을 체감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긍정적인 목표-지향점이 존재하고 이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직장에서 하는 일’과 구분될 수 없으며, 결국 우리 모두는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추구하는 어떠한 의미나 가치, 좋은 목적을 실현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당연한 가정(Assumptions)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우리 구성원들이 이러한 가정들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 조직에서 벌여지는 다양한 일(업무)들과 개인의 삶에서 추구하는 좋은 의미나 목적 혹은 세상에 미치고 싶어 하는 좋은 영향(Impact)과의 연결성을 높여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일에 대한 부정적인 가정들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반면에 일에 대한 가정을 확인하는 접근에는 ‘일 중독자’를 확인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일 외적인 요소들에 의미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워라인’ 차원에서 일하는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보장해줄 경우, 이들은 일 외적인 요소들에 대한 최소한의 시간 마저 기꺼이 ‘직장에서의 업무’에 할애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조직 입장에서 결코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 없는데, 이들은 만일 자신의 업무에서 성취감이나 성장감을 느끼지 못할 때, 일 외적인 요소(놀이나 취미, 가족, 공동체)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쉽게 번아웃(Burn-out)을 경험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조직에서 ‘워라밸’ 차원의 접근을 통해 일 외적인 요소에서도 의미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노력이 요구된다.
실제로 ‘임원에게 반 강제적으로 연차 쓰게 만들기’와 같은 조직문화 활동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만일 그 임원이 ‘일 중독자’ 성향이 높다면 이러한 접근들이 오히려 유효한 접근일 수 있다. 더 나아가 만일 일 중독자 임원에게 연차를 쓰게 하고, 그 시간에 가족과의 시간이나 다양한 취미, 놀이를 즐겁게 경험하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 조직이나 구성원의 특성상, 어떠한 방식을 통해 삶의 모든 요소들에 대한 건강한 경험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자유기고가인 디아나 드바라(Deanna deBara)가 그녀의 칼럼(What is work-life integration anyway?, 2022)에서 소개한 컨설턴트인 알렉시스 하셀버거(Alexis Haselberger)는 사람에 따라 일과 일 외적인 요소 간의 시공간적으로 강력한 경계를 선호하는 이(Segmentors)와 일과 일 외적인 요소 간에 유동적이고 서로 넘나들 틈이 많은(porous) 경계를 선호하는 이(Integrators)로 나눠진다고 설명하는데, 강력한 경계를 선호하는 이들은 경계가 없을 경우 어느 한 쪽이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차지할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유동적이고 모호한 경계를 선호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시간과 공간을 구조화 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셀버거의 말을 해석해보면 워라밸-워라인 중 우리 조직에 적합한 접근을 선택하는 기준은 구성원 본인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업무의 시간과 공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의식의 발휘가능성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우리 조직의 업무특성이나 구성원 개인 특성 상 자신의 업무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조직 차원에서 일 외적인 요소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강력한 경계를 만들어주는 ‘워라밸’ 차원의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 반면에, 업무 시간과 공간을 구성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나 업무 특성, 혹은 개인 특성을 갖고 있다면 스스로 업무 시간과 공간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워라인’ 차원의 접근이 유효한 셈이다.
이는 조직에 워라밸/워라인 양 접근이 동시에 적용될 필요가 있음도 설명한다. 업무에 필요한 역량이나 결정권한을 가진 이들, 혹은 업무특성상 유연한 업무수행이 가능한 부서의 일원들에게는 워라인 차원의 접근이 보다 적합할 수 있지만, 업무역량이 부족하거나 결정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이들은 주변 동료나 리더와 함께 일하는 시간이 필수적이기 마련이며, 그만큼 업무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음으로, 이들에게는 일 외적인 요소에 대한 시간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 조직이 확보하고자 하는 조직역량이 무엇인지와도 연결된다. 만일 우리 조직의 사업이나 경영환경이 구성원 각자의 주도성이나 창의성, 민첩성이나 유연함을 기대하는 집단이라면 필연적으로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적시에 필요한 업무행동을 하는 것을 요구할 것이며, 이 경우 워라인 차원의 제도나 시스템, 업무환경 구축 노력이 요구된다. 반면에 우리 조직의 사업이나 경영환경이 고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이뤄져야 하고, 성과 달성을 위해 분명히 요구되는 최소한의 업무 수행시간이 존재하고, 해당 업무시간에 자신이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역량이 요구된다면, 이 경우에는 워라밸 차원의 제도나 시스템, 업무환경 구축을 통해 구성원들이 일 외적인 요소들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럼 이제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워라밸, 워라인. 둘 중 뭐가 맞을까? 이것은 조직이나 구성원에게 있어 그다지 의미 없는 논쟁거리에 불과할 수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는 지금 일을 포함한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것들 각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하는데 있어 우리 조직이나 개인의 특성에 더 알맞은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