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 변화가 가진 근본적 한계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
구매·영업·생산·연구 등 조직문화와 무관한 업무로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 A대리. HR부서가 짧고 핵심적으로 진행하기로 한 가치 선포식이 그의 팀에 도착했을 때, 계획적 변화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A 대리가 한 명 있다. 이 사람은 구매나 영업, 혹은 생산이나 연구 등 조직문화나 인사관리와는 전혀 무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심지어 팀 안에서 다양한 역할과 과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어느 날, HR부서에서 회사의 새로운 조직문화 전략, 인재상, 핵심역량 등이 정의되어 선포식을 개최한다고 한다. A대리가 속한 팀의 멤버들은 선포식 일정에 맞춰 업무 스케쥴을 조정하고, 선포식에 참여한다. HR부서는 A대리의 팀을 비롯, 회사의 중요한 전략, 사업을 담당하는 여러 팀들의 업무비중을 고려하여 선포식은 최대한 짧게 핵심적인 정보만을 공유하기로 한다.
선포식날, HR부서는 새롭게 정립된 가치체계와 조직문화 혁신전략, 그와 연계된 과제들을 공유하고 과제 중 하나로 수립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올해 안에 할당된 프로그램 중 최소 60%를 수료할 것을 안내한다. 이를 듣는 A대리의 마음은 어떨까?
위의 상황에서 정답은 사실 ‘모른다’가 정답이다. 우리는 A대리가 HR부서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 바쁜 업무 중에도 회사의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A대리가 학습과 성장, 조직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는지, HR부서가 저 일련의 과정 속에서 A대리를 비롯한 회사 내 구성원들에게 전략이나 과제들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공유했는지, 그리고 공유 이전에 전략과 과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지문을 읽은 당신이 ‘아우, 정말 짜증나겠지.’라거나, ‘업무하기도 바쁜데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라고 느꼈다면, 왜 그러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을까? 왜 당신은 A대리가 부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짐작했을까? 필자는 당신이 앞의 지문 속에 디테일한 상황을 모르더라도, 부정적으로 가정할 수 있었던 2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1_ 변화 주체가 아닌 변화 대상으로 인식되게 만드는 접근방식의 문제
계획적 변화(Planned Change)는 본래 혁신을 기획하는 사람과 혁신을 실행하는 사람간의 상호협조를 통해 조직의 문화를 변화시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변화기획자가 변화실행자의 협조자 역할에 충실해야 할 뿐, 결코 지시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획자와 실행자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생각하지 않은’, 혹은 ‘내가 원하지 않은’ 변화 방향을 실행자가 수용해야 한다는 문제를 일으킨다. 실제 혁신기획자는 대부분 경영진과 HR담당 부서, 일부 외부 인력(컨설턴트나 교수)들이 되고, 실행자는 기획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의 구성원이 되면서 구성원들은 갑자기 새로운 조직문화 방향을 듣게 되거나 자신의 스케쥴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추가적인 역할이나 업무(프로그램 참여)가 발생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기획자는 실행자들이 자신들이 계획한 만큼의 변화를 실현했거나, 혹은 변화 노력을 이행했음을 점검하고자 프로그램 참여율이나 프로그램 수료 전/후 진단을 필요로 하며, 당연히 실행자들이 분기나 반기, 혹은 연내에 적정 수준의 프로그램을 수료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들 스스로도 그렇고, 구성원들도 기획자를 상담역이라던지, 협조자의 역할 보다는 관리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프로그램의 가치나 효과, 혹은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하는 목적에 대해 공유하거나 설득하는 과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만일 실행자인 구성원들이 공감하지 않고, 참여를 미룬다면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 수료시 인사평가에 반영하거나 보상을 제공하는 등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만드는 다양한 유인책을 사용하게 된다. 구두로 하지 않을 뿐, 지시나 강요는 이미 발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행자인 구성원들은 어느 순간 프로그램 과정 자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변화의 가치나 즐거움, 보람보다 프로그램 참여 이후에 확보할 수 있는 보상이나, 미참여시의 ‘손해나 불이익’에 집중하게 되고, 프로그램 참여는 일종의 ‘숙제’나 ‘의무’로 받아들이게 된다. 참여 과정에서 본질에 집중하려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2_ 문제나 결함을 인정하고 개선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정하라는 접근의 문제
대부분의 계획적 변화, 특히 조직문화와 관련한 계획적 변화는 대부분 조직문화 진단 이후이거나, 혹은 새롭게 수립된 사업-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일, 사람, 조직에 대한 변화 방향성과 관련된다.
진단 과정에서 어떤 모델을 쓰든 지에 관계없이, 진단 결과를 보면 그 조직이 현재 ‘탁월하게 잘 하고 있는 것’과 ‘부족한 것’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설령 진단 참여자들의 주관식 인식 결과의 합이라 해도 결국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의 차이가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계획적 변화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부족한 것들을 개선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시도된다.
이는 결론적으로 기획자가 실행자에게 ‘당신의 부족한 점은 이것이니, 이것을 개선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말해 ‘당신의 문제, 결함을 인정하라’는 것부터 전제한다.
그런데 만일 실행자(A대리)의 입장이라 생각해보라. 나름 자신의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정신적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심지어 자신의 업무를 함께 한 적도 없던 누군가가 ‘자신(A대리)’이 참여한 진단결과를 놓고 ‘이게 문제가 되니, 이것을 개선하시오.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올해 안에 적어도 3개 이상 참여하시오.’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긍정적 정서 상태의 조직이라면 자발적인 회고나 성찰 과정을 통해 이를 수용하고 강화할 수 있지만, 부정적 정서 상태의 조직인 경우 이러한 부정적 피드백을 공격신호로 받아들이고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가 작동할 확률이 높다. 부정(Denial), 퇴행(Regression), 전위(Displacement), 합리화(Rationalization), 수동-공격성(Passive Aggression) 등을 발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며, 특히 대개의 경우, 부정적 정서 상태의 조직이 실제로 문제나 결함을 많이 가진, 개선대상이자 가장 중요한 ‘실행자’임을 볼 때, 접근 과정 자체에서 목표달성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실행자가 ‘문제나 결함의 원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대부분의 조직문화 이슈는 특정 일처리 방식이나 시스템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해당 일처리 방식과 시스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편안하게 인식하는 ‘사람’들과 관련한다는 것이고, 그 사람이 결국 진단에 참여하고, 기획자의 기획 내용을 들으며, 심지어 실천해야 하는 ‘실행자’들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기획자는 회의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회의문화나 회의프로세스를 안내하려 한다고 했을 때, 실행자인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잘못된 회의방식을 해왔음을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이러한 회의를 주관해서 운영한 실무조직의 리더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의에 단지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이러한 변화과정을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회의에 대한 권한을 가진 이들의 개선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집단 내 대립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획자’의 역할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조직문화 변화 방향을 수립하고, 필요한 변화절차와 방법을 확보하고, 이를 이행하는 노력 자체는 기업이 존재하는 한 지속되어야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조직 안에 존재하는 문제나 결함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그렇기에 이를 전담하는 인력,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계획적 변화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다시 말해, ‘기획자’와 ‘실행자’를 구분하는 방식은 변화 대상자인 구성원들의 변화 의지나 수용성을 확보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이러한 한계에 기반한 부정적 효과를 구성원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조직문화 변화에 대한 참여의지 자체가 하락하고 목표한 변화를 실현하기가 어려울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특히나, 구성원 자신이 가진 가치에 집중하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행동하려는 경향(구성원 행동주의 ; Employee Activism)을 가진 오늘날 구성원 특성을 고려하자면, 더더욱 계획적 변화는 그다지 효용성이 높은 조직문화 변화접근이라 보기 어렵다.
이제는 ‘기획자’와 ‘실행자’를 동일시하는 접근, 즉 구성원들 스스로 변화의 방향과 절차, 방법을 결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자생적 변화’ 접근을 강력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런던경영대학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는 구성원들이 ‘변화의 주인공으로서 인식하게 만들고, 자신이 가진 강점을 통해 변화에 기여하거나, 주도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질적 상호작용(High-Quality Interaction)이 실제 변화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자생적 변화 접근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달에는 자생적 변화 접근을 위한 몇 가지 방안들과 그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3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당신이 계획한 방안이나 접근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