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칼럼2024년 6월

조직문화 변화가 어려운 이유

파리 근교 샤투의 한 레스토랑, 매년 모이는 14명의 단골 손님. 같은 시간 다른 카페에서 술에 잠긴 또 다른 풍경. 두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일상의 안정성이다. 조직문화 변화는 이 안정성과 맞서야 한다.

이 원고는 HR Insight 2024년 6월호 칼럼 원고로 작성되었습니다. 실제 게재본은 해당 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리 근교 센 강변에 위치한 샤투에 한 레스토랑이 있다. 확 트인 시야 너머 푸르른 나무들과 강 위의 배들을 구경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가 있는 이곳은, 테라스 위에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워주는 천막을 놓아 시원하게 경치를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근사한 곳이다. 이곳을 매년 찾아온 한 남자는 자신과 함께 뱃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과 즐겁게 점심을 즐긴다. 매년 찾아온 덕분인지 식당주인의 아들내미를 포함해 학자, 노동자, 상인, 여배우, 관료까지 직업과 성별을 초월한 14명이 보인다. 이들 한 명 한 명과 이곳에서 함께 한 일상이 너무 행복했고, 지금 이 순간도 매우 행복하다는 감정이 차오른다. 이들을 추억에 남기기 위해 남자는 붓을 든다. 그렇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추억은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Le déjeuner des canotiers)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았다.

어둑한 밤 자정을 넘어 한 남자는 카페에 들어선다. 피처럼 붉은 벽지, 낡은 마룻바닥 위 중앙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당구대가 놓여있다. 당구대를 포위하듯 둘러싼 테이블에는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하층민처럼 보이는 한 남자는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우울한 기분을 감추고 싶은 것인지 두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리고 있다. 당구대를 가로지른 반대편 테이블에는 두 남자가 상체를 테이블에 바짝 붙인 체 범죄라도 모의하는지 구부정한 자세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낡고 허름한 공간에 어울리는 이들만 가득하다. 안정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뜨내기들이 안 그래도 어두운 자신들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지켜보는 남자 또한 자신의 처지가 이들과 다르지 않음에 몸서리친다. 이 카페 주인에게 밀린 하숙비도 낼 겸, 이 감정을 남기기 위해 남자는 붓을 든다. 그렇게 3일여에 걸쳐 완성된 반 고흐의 추억은 ‘밤의 카페(Le Cafe de nuit)’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았다.

자신이 있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일상을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경험을 해석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너무나 다른 감정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한 쪽은 지극히도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한 작품은 우울감과 음험함, 긴장을 준다.

조직문화는 이 두 사람의 작품과 같다. 정확히는 ‘당신 회사의 조직문화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당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사고 흐름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조직문화를 평가할 때, 누군가는 회사에 있는 다양한 복지제도나 프로그램들을 떠올릴 거라 생각하거나, 사무실 벽면에 있는 가치체계를 떠올릴 거라 생각해 주길 바랄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자신의 일상 경험들을 반추하고 이를 해석한 결과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미시건대 교수이자 조직이론 석학인 심리학자 칼 와익(Karl Weick)이 조직문화에 대해 ‘집단 구성원이 서로 상호작용할 때 생성되는 창발적인 이해’로서 공유된 의미(Shared Meaning)이라 말한 것에서도 그러하고, 조직문화의 형성 원리를 외부환경에 적응하고, 내부정서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그룹학습의 결과로 설명하는 에드가 샤인(Edgar H. Schein)의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결국 우리가 조직문화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방식은 우리가 일상을 함께 하는 이들과 어떠한 상호작용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는지로 결정된다.

그렇기에, 조직문화의 변화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것을 단순히 조직문화 파트를 맡았다고 해서, 조직문화를 주 업무로 담당하는 팀이 생겼다고 해서 그 담당자 혹은 그 팀이 회사 전반의 조직문화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사실 조직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시 말해 구성원 각자의 일상 경험을 변화시키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리더다. 더 정확히는 구성원 일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정도가 높거나, 일상에서 구성원 스스로가 중요하게 인식하는 사건이나 상황의 변화를 이끌어낼만한 재량권(Domain) 영역을 가진 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대개의 경우 이런 이들이 리더인 경우가 많다. 샤인 또한 그의 마지막 저서(2021, Organizational Culture & Leadership)을 통해 문화는 분명 그룹학습의 결과이고, 리더는 그 과정에 부분으로서만 영향을 주며, 안정화된 문화는 심지어 리더를 선발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리더는 그 문화를 창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며 리더의 역할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실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조직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중요성을 공감하는 리더들, 특히 구성원들의 일상에 대한 개입 정도가 높은 실무단위 조직의 리더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이들을 회사가 추구하는 조직문화 구현에 기여하도록 지원하는 조직문화 담당자 또는 팀의 지원 역할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일찍이 이를 이해하고 리더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제공해왔다. 조직문화를 다루는 리더십 역량을 배양하는 다양한 교육과 코칭, 도구 지원들이 그러하다. 심지어 필자와 같은 외부의 컨설턴트가 일정기간 조력자로서 리더 한 명의 조직문화 변화 노력을 지원하는 접근도 최근 여러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모두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조직문화의 원리를 이해하고, 폭 넓고 심층적인 지원을 하면서도 때로는 조직문화의 변화들이 실패하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원인은 여러가지다. 변화에 참여한 조직문화 팀, 외부 컨설턴트, 리더가 조직문화 변화와 관련한 지식이나 기술 부족이 원인일 때가 있고, 조직문화 변화를 위해 필요한 충분한 재량권이나 자원 부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적자원의 교체나 추가 학습,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이슈들이며, 비교적 해결방향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대개의 경우 변화를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의 검증과 준비과정을 통해 해결하기도 하는 원인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중요한 실패 원인이 되는 것은 다름아니라 조직문화 그 자체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정확히는 조직문화가 갖는 특징에 기인한다.

에드가 샤인은 조직문화의 특징으로서 4가지를 설명하는데, 먼저 구조적 안정성(Structural Stability)이 있다. 사람들이 조직문화로 인식할 만큼 루틴한 일상 내 상호작용 패턴이 안착되고,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편안하게 받아들일 만큼의 암묵적인 가정들이 형성되면, 이 때의 조직문화는 특정 개인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유지될 뿐만 아니라, 일시적 변화를 시도해도 다시 본래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가정과 이와 관련한 상호작용 패턴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즉, 일시적으로 강하게 일상 내 상호작용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는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둘째로 깊이(Depth)가 있는데, 우리가 조직문화를 판단하게 만드는 일상의 경험들, 즉 바꾸고자 하는 현상(Phenomenon)들은 분명 개인 차원의 말이나 행동, 조직 차원의 제도나 기능들일 수 있지만, 정작 이러한 행동이나 말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표출되게 하는 기저 요인들은 보이지 않는 가정들로 집단 내부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그 가정들이 무엇인지, 몇 개나 작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즉, 어떠한 가정들이 지금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해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새로운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고, 때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세번째 특징인 폭(Breadth)도 조직문화 변화의 어려움을 설명하는데, 사실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상호작용들, 예컨대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나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 업무 결과나 과정을 인정받는 방식, 특히 승진이나 입사, 퇴사, 보직이동과 같이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들은 다양한 제도나 시스템들이 상호 연결되어 최적화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태동기라 할 수 있는 창업초기에는 이러한 제도, 시스템들이 때로는 아예 없거나, 정교하지 않아 그때 그때의 상호작용 패턴을 바꾸는 것이 쉬울 수 있어도, 조직의 규모가 거대해지고 제도나 시스템들이 체계화될수록 특정 상호작용 패턴을 바꾸는 것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거나, 건드리기에 조심스러운 제도나 시스템들의 변화를 요구함으로써 결국 시도를 중단하거나, 왜곡되거나, 형식적 변화로만 머무르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마지막 특징도 조직문화 변화의 장애요소인데, 패턴화와 통합(Patterning or Integration)이 그것으로, “최대한 합리적이고 질서 있게 만들려는 인간 욕구가 문화의 본질”이라고 설명하는 샤인의 말처럼, 기존 조직문화, 기존의 일상 내 상호작용과 거기서의 경험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집단 내부에서 나름의 합리성과 질서를 구축한 것이며, 이를 구축한 개인들은 작게는 조직문화에 영향력이 높은 리더부터 시작하여 집단 전체일 수도 있다. 즉, 조직문화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은 기존 조직문화를 합리적이라 인식하고 나름의 질서를 구축한 사람들에 대한 지난한 설득과 지원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정작 조직문화 변화의 대상이자 일상 경험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주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말 몇 마디, 혹은 제한된 수준의 동기부여 장치 몇 개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보자면, 사실 조직문화 변화는 조직 전반의 대대적 변화 노력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분명한 목표점을 갖고 점진적인 전략적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 분명 이러한 변화 방향을 앞장서서 심도 있게 고민하고, 내/외부의 다양한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제공해야 할 조직문화 담당자/팀이나, 담당 조직의 제도, 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재량권을 가진 리더, 이들을 지원할 외부 조력자들의 가치가 폄하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욱 조직문화 변화 노력에 중요한 이들이 있다면, 결국 ‘일상을 스스로 만들고 경험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변화 대상이자 주체인 ‘구성원’들의 가치가 가장 크다.

진정으로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려면 구성원들이 리더나 조직문화 담당자만큼이나 조직문화의 특징을 이해하고, 리더나 담당자만큼 추구하는 조직문화 변화 방향을 이해하도록 돕고, 나아가 일상에서 변화시켜야 할 상호작용 패턴들이나 이를 위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제도나 시스템의 변화들을 이해하고, 구성원 자신들을 포함해 리더나 담당자마저도 변화 과정에서 피로나 회의감, 저항, 반발심이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관리할 필요성을 인지시켜주는 노력이 변화 과정에서 지속가능해야 한다.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가 말하는 질적 상호작용 접근이 중요한 이유이자, 변화의지 형성이 가시적 변화실행보다 1초라도 먼저 앞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이렇듯 어렵고 지난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우리의 일상이 나아지고 개선되고 있음을 변화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로 한다. 앞서 조직문화가 공유된 의미라 설명한 칼 와익교수의 작은 승리전략 ‘작은 승리 전략(Small Wins Strategy)’이 말하듯, 조직문화 변화는 분명 거대하며 심지어 불가능하게도 보이지만, 오늘 하루, 이번 한 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상호작용들이 존재하고, 이를 목표로 삼고 성취해 나가고 있음을 체감하도록 도와야 한다. 때로는 구성원들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변화 요소들도 외부 조력자나 리더, 담당자들이 노력하여 가치를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

분명 조직문화 변화는 어렵다. 때로는 필자 또한 암담하고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시도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너와 나의 일상’이 좀 더 행복하고, 보람 있고, 만족스럽기 위함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단순한 감정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일하며, 무엇을 매일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