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을 시작하며 점검해 볼 3가지 조직문화 요소
필자가 24년 한 해 동안 함께한 조직들은 5~6명 작은 실무조직부터 50~80명 규모의 조직까지 다양했다. 그들이 느낀 현재의 조직문화와 추구하는 조직문화를 함께 정의해 본 경험에서, 새해에 점검해보면 좋은 사안들을 정리한다.
25년을 시작하며 점검해 볼 3가지 조직문화 요소.
필자가 24년 한 해 동안 수행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5~6명 규모의 작은 실무조직부터 50~80명 내외의 조직을 맡아 3~4개월 동안 대상 조직의 구성원들 함께 조직문화를 변화를 시도해본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20여개의 조직에서 그들이 느끼는 현재의 조직문화와 추구하는 조직문화를 함께 정의해보고, 실제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는데, 25년 새해를 맞이하여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올 한해 점검해보면 좋음 직한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해 공유해보고자 한다.
1_심리적 안전감은 여전히 부족하며, 여전히 중요하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이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다들 알고 있고, 이를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4년 한해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은 ‘이 조직 안에서 자신의 솔직한 의견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공통된 특성이 많은 일부 소수와는 솔직한 의견과 생각, 나아가 감정까지 공유되고 있었지만, 조직 전체 또는 리더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만 의견을 제시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직은 구성원 간에 공유되고 있는 일과 조직,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이 리더에게 전달되지 않아 리더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심지어 리더 본인에 대만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리더가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리더십이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리더가 조직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슈를 인지하고 해결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심리적 안전감이 공유되는 소집단끼리의 갈등도 존재했는데, 협업 혹은 일상 생활 과정에서 발생한 작은 오해나 갈등이 생긴 양자가 당시 경험한 부정적 감정들을 자신이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집단의 동료들에게 전파-확산되게 되면서 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의 갈등으로 확장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집단간 갈등은 직렬, 또는 직군이나 직급, 연령 등 실로 다양한 집단간에 발생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상호간 유기적 협력과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응집력 확보를 방해하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갈등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같은 근무공간에서 장시간 생활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직장, 일터에 대한 만족감도 높지 않은 상태였으며, 다른 조직으로의 이동이나 전출, 이직을 고민하는 구성원들 또한 존재했었다.
심리적 안전감은 단순히 창의적 성과를 높이는 아이디어의 발굴이나 실수나 문제의 조기 발견과 예방 등 사업에만 이로운 것이 결코 아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이를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 구성원들이 심리적인 편안함, 안정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이 심리적인 편안함, 안정감을 느낄 때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할 수도 있다. 즉, 이 글을 읽는 독자이자 구성원 또는 리더인 당신이 직장에서 보내는 많은 일상의 시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적 안전감을 단순히 기술이나 역량으로서만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심리적 안전감 수준을 측정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이미 공유되고 있는 시점인 만큼, 올 한해 당신의 조직은 ‘심리적으로 안전한지’ 측정해보고, 이를 강화해보는 접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에이미 애드먼슨의 7가지 문항으로 한 번 측정해 보길 바란다. 평균 4점 이상이면 좋은 상태지만, 2점 이하라면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원인을 빨리 찾고 해결할 필요가 있다.
- 실수를 해도 책임을 추궁 당하지 않는다.
- 문제가 발견되면 거리낌 없이 제기할 수 있다.
- 동료의 의견을 존중한다.
- 위험을 감수해도 안심할 수 있다.
- 동료에게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 내 업무를 방해하거나 힘들게 하는 자가 없다.
-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2_감정을 자질이나 태도로 보는 문제.
24년 필자가 프로젝트를 맡았던 20여개 조직 일부 조직에서는 감정 공유의 필요성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거나, 혹은 감정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있었고, 이들은 감정을 구성원으로서 가진 일종의 자질이나 태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다음과 같은 발언들이 도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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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솔직한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게 좋은 걸까? 안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연차 직원이다보니…이게 계속 좀 보통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려 했던 거 같아요.”
“사실 회사생활에서 저 같은 경우는 항상 저는 좋음 했는데…”
당신이 위의 발언 내용들이 당연시되는 조직의 주니어 구성원으로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슬프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어 안 좋은 감정이 내면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해 보자. 당신의 직장생활은 크게 두 패턴으로 나뉘게 될 수밖에 없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지내거나’, 아니면 ‘내면의 감정이 들킬 까봐 최대한 무표정하게 지내거나’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다. 해소해 나가는 과정 중에는 누군가 자신의 내면 감정을 알아차리게 될 까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 이런 직장생활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러한 상태로 동료와 협업하거나, 높은 강도와 압박감을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제대로 된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을까?
감정은 인간으로서 가진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이며, 감정은 부정적일 때도, 긍정적일 때도 있다.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감정이 지속적으로 요동치는 상태를 뜻한다. 가능하다면, 가장 좋은 상황은 고요한 상태와 긍정적 감정 상태 사이에서 감정선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업무에서의 실패나 실수, 혹은 개인적인 이슈로 인해 언제든지 부정적 감정 상태로 빠질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당연시해야 한다.
오히려 구성원들이 부정적 감정 상태에 있을 때, 그리고 그 감정을 개인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이를 빠르게 감지하고 해소할 수 있는 조직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그 개인이나 조직의 퍼포먼스 차원에서 이롭다.
하지만 24년 국내 기업 중 일부 조직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여전히 감정을 직장생활, 업무에 있어서 불필요한 것 혹은 특정 감정을 바람직한 구성원의 태도로 인식하고 해당 감정 상태만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 칼럼을 통해 내면 감정을 억제하 거나 숨긴 리더들의 경우 억눌린 부정적 감정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고 갑자기 화를 내거나(Yam et al. 2016), 건강을 해치는 일(Hülsheger & Schewe, 2011)이 발생한 반면,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할 때 팀워크, 아이디어 생성,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되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교수인 마이클 파크의 주장을 빌어 감정 공유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바 있었다.
이들의 주장과 연구는 인간 개인의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그 감정의 발생 원인이 같은 집단, 같은 조직에 속한 동료나 리더와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당신의 조직문화는 어떤가? 당신의 조직에서도 혹시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감정들을 편안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특정 감정의 상태만을, 아니면 아예 감정 표현 자체를 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다 타인의 시선에서 여유로워지는 시점, 일반적으로 고직급자나 혹은 관리자에 자리에 이르러서야 내면의 진정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가정해보라.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놓친 채 살다가, 여전히 감정 표현 자체를 일종의 안 좋은 태도로 여기는 조직문화에 있는 상태로 말이다. 필자가 경험한 올 해의 조직들 중 일부는 이러한 조직문화에서 성장한 리더나 고직급자들의 폭언, 혹은 고성을 부정적 조직문화 이슈로 정의한 사례가 상당수 발굴되었으며, 이러한 행동들이 주니어 특히 사회초년생인 신입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심리적 불안 상태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리고 싶다.
지금이라도, 직급과 위계를 떠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당연시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설령 나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 감정을 들어야 하는 불편한 순간이 오더라도 말이다. 그 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솔직한 피드백들을 주고 받을 수 있다.
3_인정과 칭찬, 자주 하나요?
필자가 24년에 접한 조직들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일상적 공헌이나 작지만 분명히 해낸 성취점들, 예컨대 오늘 하루에 해야 하는 일들의 완수나, 아이디어의 제시, 혹은 업무 단계 상에서의 진척들에 대해 인정하거나 칭찬하는 일들이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다.
인정과 칭찬이 드문 이유는 크게 3가지 였는데, 하나는 “동양적(때로는 한국적) 문화라, 겸손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정과 칭찬을 자주 해주는 것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상대가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오해하여 자만하거나 발전을 멈출까봐”였으며, 마지막 하나는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낯간지럽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해, 동양적 문화에서 칭찬은 오히려 장려되는 것이며, 겸손과 칭찬을 같은 저울위에 올리지 않는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며,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한다.”는 구절에서 보듯, 칭찬이라는 행위는 타인의 좋은 점, 훌륭한 일을 높게 평가하는 행위이자, 상대방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주고 나아가 칭찬을 한 당사자가 칭찬을 받은 당사자와 좋은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호혜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동서양 철학 모두 미덕으로 보고 있으며, 지나친 겸손은 자기비하 또는 교만함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두번째 이유인 오해와 자만은 제대로 된 인정과 칭찬이 아닌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데, 첫번째 이유인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칭찬”이 될 수 있는 상황도 여기에 해당한다. 인정은 사실이 그렇다고 여기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심리학자인 알버트 밴두라가 말하는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사회적 설득 과정으로서의 인정과 칭찬은 매우 구체적인, 즉, 인정과 칭찬을 듣는 당사자가 ‘자신의 어떠한 수행 능력이 좋은지’ 확신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막연히 ‘넌 최고야’, ‘잘하고 있어’처럼 칭찬하는 경우 당사자는 자신의 어떠한 수행능력이 좋은지를 모르고, ‘왜’ 칭찬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첫번째 이유처럼 ‘부담스럽거나 불편해질 수도 있고’, 두번째 이유처럼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는 있다. 즉, 제대로 된 인정과 칭찬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세번째 이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인정과 칭찬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혹은 고숙련자가 저숙련자에게 하는 일종의 보상행위로서만 인식하고 있거나, 앞에서 말한 일종의 관계 증진 차원의 사교적 행동으로서만 인식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정과 칭찬은 인간이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내에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 받고 싶어하는 욕구(인정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행위이자, 몰입과 자기효능감 향상을 통해 더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들며,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이 의미있고 가치있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즉, 더 어렵고, 압박감이 심하며, 도전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될 필요가 있는 고숙련자, 고직급자일수록 어쩌면 더 자주 경험해야 하는 요소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인정과 칭찬의 순기능은 비단 상급자, 즉 선배나 관리자만이 아니라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동료가 동료에게 할 수도 있으며, 오히려 구체적인 인정과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제한되므로, 채널 자체를 다각화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당신의 조직문화는 어떤가? 당신의 조직에서도 인정과 칭찬에 인색한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당신부터 당신 주변 동료들을 보자, 오늘 하루 지난한 과제들을 묵묵히 처리하고 마침내 끝낸 동료, 좀 더 나은 보고서, 혹은 기술과 제품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낸 동료가 있다면, 그것이 설령 당장의 성과로, 매출로 나오지 않더라도, 그날 하루, 그날 한 장면만큼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칭찬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인정과 칭찬이 일상화된 조직문화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